정세랑 작가의 책을 좋아한다.
평범한 우리 주변의 모습을 그리고 있는 듯하면서도 무언가 기괴하고 이상한 일이 일어나고, 그런 와중에도 진짜 자그마한 희망이랄까, 인간에 대한 실낱같은 신뢰 같은 걸 느낄 수 있게 해 주기 때문이다.
넷플릭스에서 <보건교사 안은영>을 드라마로 만든다는 소식을 듣고 설레며 기다렸는데, 어젠 너무너무 바빠서 못 보고 오늘에야 볼 수 있었다. 정세랑 작가와 이경미 감독, 그리고 정유미 배우까지! 설레는 마음으로 넷플릭스를 열었고, 순식간에 6화까지 쭉 다 보았다.
보건교사인 은영은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딱히 어떤 이익을 얻지 않으면서도 남을 도우며 살아간다.
귀찮기도 하고 시시때때로 욕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그런 상황들이 펼쳐지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해 나쁜 것들을 막아가며 사는 은영. 은영의 곁에는 엄청나게 좋은 기운이 감싸고 있어 나쁜 일을 겪지 않을 것 같은(하지만 사고로 다리가 불편해진) 한문 교사 인표가 있고, 그 둘은 사연 있는 곳에 세워진 목련고등학교에서 벌어지는 기기괴괴한 일을 함께 헤쳐간다.
드라마를 보며 인상적이었던 것 몇 가지를 들자면 우선 캐스팅을 얘기할 수 있겠다.
드라마의 내용이나 연출에 대해서는 호불호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정유미의 안은영에 대해서는 다들 찬사를 보내지 않을까? 사명감을 가지고 온갖 이상한 것들과 싸워가는 모습부터 생활인으로서 무기력한 모습으로 그저 존재하는 모습, 그리고 괴물과 싸우는 과정에서 느껴지는 광기까지! 책을 읽으며 상상한 안은영은 정유미처럼 여리여리하고 예쁜 사람은 아니었지만, 드라마를 보고 나니 정유미가 아닌 안은영은 상상할 수도 없겠다는 생각을 했다.
홍인표 역할을 남주혁이 맡는다는 글을 보고는 조금 걱정했었다. 원작의 홍인표는 왠지 존재감이 희미한 보통 체격의 남자, 지나가다 살짝 부딪쳐서 뒤를 돌아봤을 때 내가 부딪친 남자가 누군지 찾을 수 없을 것 같이 평범하게 생긴 남자인 것 같은 느낌이었는데 남주혁은 그런 느낌 아니지 않나 싶었던 것. 하지만 드라마에 자연스럽게 녹아 있어서 튄다든지 하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드라마의 에너지를 안정적으로 잡아주는 느낌이랄까. 생각보다 괜찮았고 그래서 좋았다.
다양한 학생들 캐스팅도 아주 좋았다. 그린 듯이 예쁘고 잘생긴 배우들이 아니라 개성있는 느낌의 낯선(내게만 낯선 건지도 모르지만) 배우들이라 진짜 고등학생들 같았고. (아라 역할 배우랑 혜민 역할 배우가 좋았다.)
그리고 이경미 감독 색깔이 느껴지는 연출도 나는 아주 좋았다. 학생들이 방송을 보며 하는 이상한 체조는 '미쓰 홍당무'에 나온 명상의 시간 방송 같은 느낌이었고, 독특한 느낌의 ost라든지 무언가를 향해 몰입하고 밀어붙이는 강인한 느낌의 여주인공들도 이경미 감독님 작품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거나 오랜만에 몰입해서 한 번도 끊지 않고 쭉 이어서 본 작품이었다.
시즌 2를 기다리며 자주 복습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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