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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책

아무튼, 반려병 - 그들을 이해하기 위하여

by 스프링캣 2020. 11.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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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시리즈를 좋아한다.
이 시리즈의 첫 책이었던 ‘아무튼, 피트니스’를 읽고 정말 큰 감동을 받았기 때문인데(하지만 운동은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이 시리즈의 모든 책을 다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새로운 책이 나오면 관심을 가지고 들여다 보는 편이다.

이번 책의 제목은 ‘아무튼, 반려병’.
반려동물도 아니고 반려’병’이라니.
‘병’이라는 단어 앞에 ‘반려’라는 단어를 붙인 이유가 뭘까 하고 궁금해졌다. 보통 ‘반려’라는 단어는 사랑해서 함께 하는 동반자나 동물에게 많이 쓰니까.
혹시 다른 뜻이 있을까 싶어 사전을 찾아 보았다.

 

출처 : 네이버 어학사전

 

생각이나 행동을 함께 하는 짝, 또는 항상 가까이하거나 가지고 다니는 무언가를 ‘반려’라 한다면 늘 골골거리고 어딘가 아픈 사람에게 ‘병’이란 가장 가까운 사람보다 더 가깝고 평생을 함께 하는 것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의 프롤로그에서 작가는 이렇게 묻는다.

“어떻게 이 책을 펼치게 되셨나요?”

작가는 ‘소소하지만 지속적으로 잔병을 앓는 사람들’이나 그들의 가족이나 친구들이 이 책을 펼치지 않을까 생각한 듯하다. 나의 경우는... 툭하면 아프다고 하는 엄마, 한때 같이 근무했던 c를 떠올리며 이 책을 장바구니에 집어넣었다.

나는 꽤 건강한 편이다. 가끔 감기에 걸리는 것 외에는 거의 아프지 않은 상태를 유지해왔다. 감기에 걸리더라도 직장에서는 어떻게든 내 몫의 일을 조용히 하고 집에 와서 한 이틀 앓고 나면 멀쩡해지는 편이라 자주 아픔을 호소하는 엄마가 엄살을 부린다고 생각했고, 다양한 신체부위의 아픔을 이야기하며 내가 편의점 가듯 병원을 드나드는 동료 c가 정말 아픈 게 맞는지 의심하기도 했다. 그가 아파서 조퇴하거나 결근했을 때 그의 일을 나눠하면서 짜증스러워 하기도 했고.

아픔을 호소하는 이들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거나 돕기보다는 그저 의지가 약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던 내가 조금이나마 바뀌게 된 건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어가면서 내가 그렇게 당연하게 생각하던 '건강한 나'라는 것이 사실 당연한 게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부터다. '아프다는 것은 취미를 선택하는 것과 달리 다소 강제적으로 겪는 일종의 사고'이며 '아픔은 결코 내가 예상하는 타이밍에 오지 않'(p15)는 다는 것을 알고난 후, '상대의 고통을 엄살로 바꾸어버'(p25)리고 '타인의 고통을 통해서 자신의 고통을 투영'(p25)하고 나도 아픈 적 있지만 너같이 나약하지는 않았다, 는 식으로 이야기했던 과거의 나 자신을 반성하게 되었다고나 할까.

 

이 책을 쓴 작가는 16년 차 평범한 직장인이면서 누군가의 아내이자 어머니로 살아가며 자신이 겪은 '잔병치레의 역사'를 담담하게 풀어내고 있다. 내 몸이 내 뜻대로 잘 움직여주는 것이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님을, 작가는 자신의 다양한 경험을 통해 말한다. 자주 아프고 괴로운 순간이 오지만 아픔에 무너지지 않고 살아가려 노력하는 모습을 보며 나에게도 아픔의 순간이 찾아온다면 어떻게 해야할지 생각해볼 수 있었다. 나 자신의 아픔에만 매몰되지 않고 주변을 돌아보며 주위의 아픈 사람들에게 진정한 공감과 위로를 전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도 갖게 되었고.

 

책을 읽다가 이전의 나를 반성하게 했던 부분이 있는데, 바로 '또 아파?'라는 질문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때의 '또 아파?'라는 질문은 다양한 스펙트럼을 갖는다.

 

  • 제1의도: (너는 자기 관리를 얼마나 못 하면) "또 아파?"라는 질타
  • 제2의도: (걱정도 되고 안쓰러워서) "또 아파?"라고 하는 연민
  • 제3의도: (지난주에 아팠는데 어떻게 다시) 또 아플 수 있지?라고 묻는 놀람
  • 제4의도: (그 정도 아픔에 너무 엄살 부리는 건 아닐까 싶어) 정말 아픈 건지 확인해보려는 의심

사실 또 아프냐는 질문은 '네', '아니요'를 필요로 하지 않는, 의문문의 탈을 쓴 명령문이다. 어떤 의도로 물어보았건 결론은 '그만 좀 아파!'라는 것인데 그 말이 아픈 이들에게는 깊은 상처가 된다. 왜냐하면 아프고 싶어서 아픈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후략) (p70~71)

 

나도 이런 질문을 종종 했었는데 3,4번 언저리의 감정을 가지고 물어봤던 적이 많았었다. 남의 아픔을 의심하며 아픈 사람의 상처에 소금을 뿌린 그런 인간이 나라니. 아픔 감별사도 아니고, 누군가의 아픔이 진짜인지 아닌지 내가 왜 판단하려 했을까. 아파서 제일 힘든 건 아픈 사람인데. 앞으로 이런 상황이 내게 생기면 작가가 말한 것처럼 '지원과 지지'를 보내며 아픈 사람의 편에 서 주어야겠다.

 

이 책의 끝부분에는 코로나 시대를 맞아 우리가 가져야 할 자세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누구라도 병에 걸릴 수 있는 지금의 상황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우리 모두는 코로나라는 새로운 계절을 마주하게 되었다. 이 힘든 계절을 견디는 방법은 수많은 나와 네가 하나의 큰 몸이라는 것을 겸허하고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치료할 길이 없다고 해서 아픔이 부정될 수 없고, 지금 내가 당장 아픔을 느끼지 않는다고 해서 아프지 않은 것도 아닌 것처럼. 어느 한쪽이 고통을 호소한다면, 내가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 해도 함께 아파해주는 새로운 의미의 면역력이 절실한 시대인 것 같다. 편도선이 붓고 열이 나는데도 다리는 괜찮으니까 운동하러 갈래!라고 할 수 없으며, 오른팔이 다치면 왼팔이 더 일할 수밖에 없듯이 그렇게 우리는 연결된 하나의 몸이자 공동체라는 인식이 새로운 유행처럼 번지면 좋겠다.(후략) (p154~155)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 너는 아프지만 나는 멀쩡해서 너만 없으면 괜찮은 그런 세상을 살고 있지 않다는 걸 나도 그리고 너도 알고 있을 것이다. 서로 이해하고 함께 가기 위해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 머리로 알았으니 가슴으로 실천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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