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양한 여자들이 그려진 귀여운 표지, 그리고 거기에 써 있는 한 문장.
“언니들 앞에서라면 나는 마냥 철부지가 되어도 괜찮다”
이 문장을 보고 이 책을 사게 되었고, 뒷표지에 적힌 글을 보며 이 책을 잘 샀다고 생각했다(뒷표지 글은 나중에 다시 적겠다).
이 책은 ‘경찰관 속으로’를 쓴 원도 작가의 두 번째 책이다. 첫 책 ‘경찰관 속으로’가 ‘언니’에게 쓰는 편지 형식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이 책은 작가가 살면서 만난 다양한 ‘언니’들, 그러니까 수많은 여성들의 이야기이다. 경찰이 되고 나서 만난 언니들부터 수험생활을 할 때 만난 언니, 친언니, 엄마의 언니인 이모, 그리고 이 사회를 살아가는 수많은 언니들의 이야기.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나오고 난 후, 예전처럼 나보다 나이가 많은 여자 선배들에게 쉽게 ‘언니’라는 말을 할 수 없었다. 남자인 선배들이 ‘여자들은 하여간 모여서 수다나 떨고 일은 안 한다니까’라는 말을 하며 여성들이 뭉치는 것을 경계하거나 폄하할 때, 나는 그런 여자들이랑은 다르다는 걸 보여주려고 의도적으로 거리를 두곤 했었으니까. 하지만 인정받기 위해 열심히 무언가를 해 봐도 결국 남자인 선배나 상사들에게 나는 그저 언젠가는 일을 열심히 안 하게 될 여자,일 뿐이었다. 쟤는 결혼하면 일 안 하고 휴직하겠지. 애 보러 간다고 맨날 빨리 퇴근할 거야. 하여간 여자들은 안 된다니까...
이래저래 몸과 마음이 지쳤을 때 내게 힘이 되어준 건 한 번도 ‘언니’라고 불러본 적은 없지만 그래도 마음으로 의지하고 따랐던 여자 선배들이었다. 언니들은 길게 말하지 않아도 내가 왜 힘든지 알아주었고, 긴 말을 하지 않고도 눈빛 하나로 손짓 하나로도 내게 힘이 되어주었다.
‘아무튼, 언니’의 첫 번째 글 제목은 ‘다시 만난 세계’이다. 언니들을 만나 내가 너무나 소중하고 충분히 가치 있는 사람임을 알게 된 후에 만난 세계는 이전과 같을 수 없다. 새로운 세계를 함께 걸어갈 소중한 인연을 만난 마음, 그 마음을 알 것 같아 책 초반을 읽으면서부터 눈물이 났다.
앞에서 언급한 이 책 뒷표지 글은 다음과 같다.

p12
언니들은 아픈 오빠를 둔 동생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였다. 따뜻한 목소리로 내 이름을 불러주었다. 나는 그들에게서 신파 없이 서로의 고통을 담담하게 대화로 풀어내는 법을 배웠다. 눈물을 동반하지 않고도 상처를 드러내는 법과 눈물을 보일 땐 부끄러움 없이 펑펑 울며 기대는 법을, 시기나 질투 없이 진심으로 누군가를 축하하는 법을, 과거와 미래에 얽매이지 않고 오롯이 현재를 누리는 법을 배웠다. 그 과정에서 나 자신이 누군가를 부양하기 위해 만들어진 존재가 아니라 마음 내키는 대로 살 권리가 있는 하나의 생명이라는 걸 깨우쳤다. 어둠이 짙게 내린 길에 가로등이 하나둘 켜지기 시작하는 느낌이었다.
원도 작가의 글을 읽으며 내가 살면서 만났던 소중한 언니들을 떠올렸다. (내게도 시벨 언니 같은 사람이 있다. 그 분에게 이 책을 선물해야지.) 그리고 책을 덮으며 그들과 내가, 그리고 모든 언니들이 안전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갖게 되었다. 아, 그리고 원도 작가가 다음 책을 빨리 내 주길 바라는 마음도 생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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